<예우회지 23년 여름호 기고>

시장경제연구원 김인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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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대국 네덜란드엔 농업부가 없다-

- 정부는 기업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인식 필요

- 기업은 정부가 달라지길 바란다면, 스스로도 달라져야

- 정부-기업 간 관계의 최종목표는 기업들이 정부의 시그널이 아닌 시장의 시그널(경쟁자의 행동과 수요자의 선택)만 보고 기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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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시장을 각각 잘 알고 그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진 대통령은 성공적인 경제운영을 할 것이다.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는 경제학과 경제운영의 영원한 숙제다. 그 시장의 중심에 기업이 있다. 오늘날 국가경쟁력은 곧 기업 경쟁력이며 한국경제가 당면한 문제의 대부분이 기업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더욱이 미래가 불가측·불확실·불연속의 세계로 규정된다면 기업이 미래 세계, 미레 시장을 주체적으로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 전체로서 기업에 대한 적절한 인식은 매우 결여돼 있다. 잘 못된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와 반 기업정서가 그 배경에 있다.

오늘의 한국경제를 일군 박정희 대통령은 물론 필자가 생각하는 의미의 시장주의자나 자유기업주의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무(無)에서 한국경제를 발전궤도에 올려놓는 과정에서 정부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되고 기업과의 연합에 의한 발전방식의 추구, 즉 ‘한국주식회사’의 모델을 고안하고 운용하여 한국경제의 오늘의 기초를 닦았다. 그 사고의 중심에는 기업의 본질과 생리, 경제에 있어서 기업의 역할에 대한 깊고 정확한 인식이 있었다. 특히 기업의 이윤동기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를 했고 기업은 정부의 경제개발노력을 전폭적으로 뒷받침하는 ‘주고-받기 관계’가 자연스럽게 성립했다. 2차 대전 후 독립한 국가들 중에서 군사쿠데타를 경험한 수많은 국가의 군사지도들 대부분이 국가주의 내지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 경제를 다 망쳐먹고 난 뒤 새삼 늦게야 시장과 기업의 중요성을 깨달은 경우를 생각해 보면 박 대통령의 기업의 본질과 생리에 대한 이해는 탁견이었다.

그간 한국경제의 질적 변화나 규모의 변화에 따라 박정희 시대가 지나면서 그 효용을 다한 박정희 식 정부와 기업 간 관계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었지만 이에 깊이 주목하고 이를 수용하려고 진정으로 노력한 대통령이나 정부는 없었다. 이 점에서는 좌·우 정부의 성격 불문이다. 박정희 때와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가 기업에 줄 것이 줄어들어 감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기업에 대한 각 종 요구는 줄어들지 않았고 점점 노동 편에 기울어진 노사관계, 국가주의 경제사상, 국민의 반 기업정서를 배경으로 기업에 대한 각종규제가 점점 더 심해져 한국은 오늘날과 같은 기업하기 정말 어려운‘규제천국’이 되어 왔다. 특히 최근에 이르러서는 소위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좌파의 경제정책 케치프레이즈가 우파 정부에서도 수용되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오도된 인식을 바탕으로 기업에 대한 규제의 강화를 정당화하는 정책과 제도가 양산되는 과정을 겪어오고 있다.

문재인 집권 5년간은 정부가 추구한 국가주의, 사회주의 경제정책 방향에 따라 최악의 정부와 기업 간 관계가 조성된 기간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 즉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탈 원전정책’, ‘부동산 정책’, 노조 편향적 ‘노사정책’, ‘금융의 자율성의 저해 등 어디에도 기업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나 고려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문 정부의 반 기업적 정책방향은 법인세율의 인상, 기업규제 3법의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 등에서 절정에 이른다.

문 정부와 기간을 같이 한 19대 국회, 20대 국회 전반부에 걸쳐 각 종 입법과 정부의 행정조치에 의한 반 시장적적, 반 기업적 규제의 창설, 강화 역시 절정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와 당시 여당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을 생각할 때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한국경제 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19대 국회에서 가결된 법률의 약 1/3이 규제관련 법률이며, 20대 국회 개원 초기 약 4개원 간에 에 발의된 법률의 약 38.3%가 규제관련 법률이다. 쉬워진 절차에 의해 양산된 의원입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입으로는 ‘규제혁파’를 강조하면서도 손쉬운 행정입법 즉 시행령, 시행규칙의 개정을 통해 ‘우회 규제’를 양산해 온 문재인 정부의 반개혁적 규제양산도 빼놓을 수 없다. 문 정부시절 신설, 강화된 규제 약 5,800건 중 87%가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중대한 법치주의의 일탈이었다.

기업가형 국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필자는 ‘기업에 좋은 것이 국가에 좋고, 국가에 좋은 것이 기업에 좋다는 조건이 동시에 성취되는 국가’ 로 정의한다. 

구체적으로 

첫째, 정부의 모든 정책과 제도가 생산적, 창의적 기업 활동을 뒷받침하는 국가, 둘째, 기업에 대한 문화, 제도, 의식 등 사회적 수용능력(social capability)이 효율적으로 갖추어진 국가, 셋째, 경제의 제 과제(성장, 고용, 복지, 분배)의 해결 주체가 기업이 되는 국가, 넷째 기업 자체는 지속적 혁신을 이뤄나가는 국가, 다섯째,  그러한 기업의 중심에 글로벌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사회적 책임에 투철한 기업가가 존재하는 국가, 마지막으로, 국가 및 정부도 능률과 성과를 추구하는 기업 형 운영이 정립된 국가다.

이러한 ‘기업가형 국가’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국민일반의 입체적 노력이 있어야한다

우선 정부는 기업들에게 가장 기업하기 어려운 조건을 제공하고 있는 ‘규제개혁’을 위한 획기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에 상응하여 기업은 ‘글로벌 기업가정신’을 정립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시에 국민들 전반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는 ‘반 기업정서’의 불식을 위해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때까지 규제개혁을 하겠다고 천명하지 않은 정부가 없다. 그러나 기업의 시각에서 보는 본질적 규제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가 계속돼 왔다. 하나를 줄이면 그 보다 더 심한 규제 하나가 창설된다. 이것이 한국에 있어서 규제 문제의 진정한 모습이다. 

시장에서의 기업 활동을 제한하는 기존 제도들은 그간의 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존하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골목상권 보호, 소프트웨어 산업 진입, 지주회사 규제, 금산분리 규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규제, 수도권 규제, 택배증차 규제, 원유가격 연동제 등 끝도 없다.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소위 ‘갈라파고스 적 규제’들이다.

그간 역대 정부에는 총리와 민간인의 공동위원장이 운영하는 규제개혁 위원회가 상설되어 규제정책을 총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이 규제개혁 관련 회의를 무려 7시간에 걸쳐 계속하면서 불필요한 규제의 끝장을 보겠다고 한 적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복잡한 규제는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규제개혁 에 정면 도전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규제개혁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중국 북송 때 추진한 왕안석의 개혁의 실패 후 당시 황제 신종이 했다고 하는 말 “개혁은 창업보다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리라고 본다. 윤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개혁은 집권보다 어렵다’가 될 것이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수상은 “개혁은 지옥과 같은 싸움이다”라고 2015년 매경 주최 ’세계지식포럼‘에서 개혁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제대로 기업에 대한 규제개혁을 하려고 한다면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규제개혁이 실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제자리에 맴돌고 있는지를 먼저 깊이 검토해야 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그 이유를 우리 정부의 조직 원리와 오리엔테이션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오는 노력을 선행하지 않으면 규제개혁은 실효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역설해 왔다. 

우리 정부의 조직은 기본적으로 수요자보다는 공급자 위주의 오리엔테이션을 가지고 있고, 기능별 역할보다는 산업별, 품목별 관리 위주의 조직 원리로 편성돼 있다. 각급 정부조직은 관장하는 산업, 품목, 분야의 발전을 책임지는 것을 기본적인 사명으로 하고 있다. 이런 사명을 가진 정부조직과 몸담고 있는 관료들이 할 일이 무엇일까? 지원과 규제 이외에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규제를 하지 말라는 말은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밥그릇을 뺏는 일이다. 이런 시장경제와 조화될 수 없는 정부의 조직원리에 대한 정확한 문제인식과 획기적인 개선이 없이는 규제개혁은 백년하청이다.

정부조직의 개혁은 정부부처 몇 개 떼었다 붙였다, 이름을 바꾼다, 규모를 축소한다, 정원을 줄이는 식의 접근이 아니고 시장경제의 원리와 조화되고 기업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차원에서 정부의 기능과 역할을 바로 세우는 방향이어야 하며 이런 방향에서 조직원리가 재정립될 때 한국의 규제개혁은 실효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통령 차원의 문제인식이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재벌문제와 중소기업 문제는 ‘한국경제 문제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기업과의 관계, 특히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이 두 분야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규제와 지원은 표리의 관계다. 규제하면 지원하게 돼있고, 지원하면 규제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분야의 문제는 너무 중요하고 기술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아 다음 기회 새 정부의  개혁과제에 대해 쓸 때 언급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문제제기만 한다. 커지면(성공하면)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작아야만(별 볼일 없어야) 지원과 보호의 대상이 되는 지금의 재벌정책, 중소기업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기업정책을 가지고 격화되는 글로벌 경제에서 한국경제, 한국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의 우위를 유지해 가는 것이 가능할까? 동시에 큰 기업의 것을 빼앗아 작은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길이 될까?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대통령 차원에서 가져야 할 문제의식이다.

정부가 이런 방향으로 간다면 기업의 입장에서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기업가정신’의 문제다. 세계적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일찍이 1995년 “기업가정신의 최고 실천국은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이다”라고 미국 Inc.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전혀 산업이 없었고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한국이 불과 몇 십 년 만에 세계적 수준의 산업국가가 된 배경을 경제개발 초기의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에서 찾았던 것이다. 

최근 한국경제의 정체의 배경에는 이러한 기업가정신의 추락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 더해 이 시대에 요구되는 기업가정신은 앞에서 언급한 과거의 기업가 정신 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도전적이다. 세계경제 및 시장의 변화를 파악하고 그 본질을 꿰뚫고 있어야 하며, 이를 기업 경영에 어떻게 접목시켜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소위 ‘글로벌 기업가정신’이다. 

정부와 기업 간 관계를 바람직하게 정립하기 위해서는 기업 역시 시장경제의 본질, 정부의 적정한 기능과 역할,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와 기업 간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수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장경제 하에서의 가혹한 경쟁원리를 받아드릴 준비, 정부의 보호막의 온존에 대한 기대의 포기, 더 이상 기업의 후원자로서의 정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기대의 포기, 국제적 수준의 투명한 경영과 기업지배구조의 구축, 진정한 의미의 국제화를 수용할 각오 등이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와 간섭에서 기업이 자유로울 수 있게 하는 전제조건이다. 정부의 지원 또는 보호와 규제는 표리(表裏)의 관계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달라지기를 바란다면 기업들 스스로도 달라져야 한다.

시장경제와 자유기업주의를 근간으로 경제를 운영하는 나라 중에서 우리 한국같이 ‘반 기업정서’가 일반화돼 있는 나라도 많지 않다. 정부의 규제와 더불어 한국의 기업발전을 가로 막는 최대의 장애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부 규제의 근거, 타당성을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선거 등 정치적 계기만 있으면 기업을 옥죄는 정책이나 제도를 선보임으로서 국민적 카타르시스를 유발하고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경향은 여야 불문이다. 최근에는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포장까지 돼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반 기업정서의 해소를 위한 다각적인 연구와 정부와 기업, 지식인 사회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새 정부는 시장경제와 자유기업주의에 대한 국가차원의 경제교육을 체계적으로 구상,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최근 윤대통령 취임 이후 세 번의 주요 기업관련 이벤트가 이어졌다. 첫째는  주요 재벌기업 거의 전부에 의해 발표된 새 대통령 임기 중 1,000조원 이상의 국내외 투자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시 이루어진 약 100조원 규모의 대미투자 계획의 연장선상에 나온 발표들이다. 두 번째는 상공회의소 주관으로 대기업을 비롯한 주요기업 대표들이 참여하여 개최한 ‘신 기업가 정신 선포식’과 이를 계기로 ‘신 기업가정신 협의회의 결성’이다. 셋째는 용산 대통령 집무 청사 앞뜰에서 개최된 ‘중소기업인 대회’와 이 장소에 자리를 같이한 5대 재벌 총수, 그리고 그들의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다짐, 이어진 윤대통령에 의한 중소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 약속 들이다.

그러나 이런 식 행사로 기업투자가 더 활성화 되고, 기업가정신이 더 고양되고, 대·중소기업 간 협력이 더 잘 이루어진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경제 못할 사람 누가 있나? 이 기업 이벤트들을 보면서 이명박의 녹색경제, 박근혜의 창조경제, 문재인의 한국형 뉴딜경제를 떠 올리게 되는 것은 필자의 과민한 생각일까? 새 정부는 기업의 협조(?)를 받아 자기 브랜드의 특별한 경제를 만들겠다는 생각, 이런 식의 정부와 기업 간 관계를 가질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바람직한 정부와 기업 간 관계는 기업들이 ‘정부의 시그널이 아닌 오로지  시장의 시그널(경쟁자의 행동과 수요자의 선택)만 보고 기업할 수 있는 기업환경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 정부와 기업 간 서로 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농업국가 네델란드에는 농업부가 없다.’일본의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가 일찍이「헤이세이(平成) 관료론」에서 당시 통산성에 주무 국, 과가 있는 산업은 다 경쟁력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윤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오늘의 이 주제와 관련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이다.